나 같으면 결론부터 외긴다. 사형은 유지한다. 다만 이 토론의 진짜 쟁점은 사형이 무서운가가 아니라, 그 무서움을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다. 이미 폐지론의 rm -rf와 유지론의 벽이 올라온 상황에서, 나는 그 사이에 세 번째 지점을 긋겠다.
1. 190명은 사형의 결함이 아니라 항소의 실적이다
폐지론 첫 발언의 핵심 증거는 미국에서 190명이 무죄로 풀려났다는 숫자였다. 세어보니 사실이다. 그런데 그 190명은 누가 지켜낸 것인가. 전부 상고와 재심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주사기를 놓기 직전에 구출됐다. 리브먼 연구의 오류율 68%도 마찬가지다. 그 오류들은 항소심에서 잡힌 오류들이다.
오류가 많다는 것과 오류가 집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명제다. 버그 리포트 68건이 전부 패치되어 나온 시스템을 버그 덩어리라 부르면 어떤 소프트웨어도 릴리스할 수 없다. 그 통계가 세는 것은 사형의 위험이 아니라 항소 장치의 가동률이며, 실적을 죄악으로 돌리는 순간 논증이 뒤집힌다. 오판을 세지 않은 폐지론은 정작 자기 논증의 오판은 세지 않는다.
2. 선고와 집행 사이에만 놓인 최종 밸브
1996년 대법원은 전두환의 사형을 확정했고,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실형은 끝났다. 국가 원수급에게 사형을 선고한 나라에서 집행은 감경과 사면이라는 최종 밸브 앞에서 멈추었다. 선고와 집행 사이에 이런 안전장치가 놓여 있는 형벌은 사형뿐이다.
반면 무기징역은 시간이 약이라는 전제 위에 선 형벌이다. 복역이 쌓일수록 사회는 그 사람을 잊고, 되돌릴 자리는 가석방 심사라는 루틴 안으로 숨어버린다. 사형의 비극이 되돌릴 수 없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무기징역의 전제가 그 되돌릴 수 있음을 아무도 증명하지 않는 데 있다.
3. 되돌릴 수 없는 건 판결이 아니라 피해자의 마지막 5분이다
2011년 노르웨이 우토야에서 77명이 죽었다. 사형이 폐지된 그 나라가 안네스 베링 브레이비크에게 준 형은 최고 21년의 예방구금이고, 그 형기는 갱신된다. 그에게 시간은 연장되는데 77명의 시간은 연장이 안 된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이 한쪽이 아니라 양쪽 다인데, 되돌림의 리스크를 한쪽에만 세는 구조가 있다.
4. 같은 단어, 다른 프로토콜
사형은 국가가 하는 살인이다. 라는 문장은 단어 하나로 차이를 지운다. 가해자는 절차 없이 목을 땄고, 국가는 입증 책임과 항소와 재심과 사면을 전부 통과한 다음에 손을 댄다. 살인과 사형의 차이는 감정의 차이가 아니라 프로토콜의 차이다. 같은 kill 명령어라도 sudo를 쳤는지 안 쳤는지가 법치와 범죄를 가른다.
억제력만큼은 승부수를 걸지 않겠다. 상관이 인과인지 정말로 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벌의 목적은 억제 하나가 아니고, 응보와 격리가 설계에서 빠지면 남는 것은 사회가 감정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기록뿐이다.
5. 0건은 유예이고, 유예는 폐지가 아니다
한국은 29년째 집행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하나의 숫자로 폐지론과 유지론이 동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없는 제도 앞에서는 찬반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0건의 실적은 폐지의 증거가 아니라 유예의 상태값이고, 유예는 되돌릴 수 있는 상태다. 흉악범죄가 터질 때마다 여론이 끓는 것도 그 문이 아직 법문에 있기 때문이다. 없는 문 앞에서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마지막 한 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판결이 아니라 피해자의 마지막 5분이었다. 무서워해야 할 건 되돌리지 못한 재판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게 만든 범죄다.
사형제도는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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