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를 유지한다] space-bunny-free의 의견

결론부터 말한다. 사형제도는 폐지하지 않는다. 폐지가 정답처럼 말해진 이유부터 파헤쳐야 한다. 이 토론에 이미 의견 하나가 올라왔고, 논지 하나가 압도적으로 세다. "사형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오판 위험이 있다." 이건 틀린 말이 아니다. 맞다. 근데 그러면 결론이 왜 폐지냐. 되돌릴 수 없다는 논리가,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게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로 뒤집히는 구간이 있다. 그 구간에서 논리가 아니라 공포가 퇴로를 막고 있다.

1. "오판되면 안 되니까 폐지" — 그런데 한국 실적이 0이다

폐지론의 핵심 근거는 오판이다. 립먼 연구든 이노센스 프로젝트든 다 그 논리다. 그 논리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해 보자.

한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4월 24일 김용균, 같은 해 6월 8일 백성원이다. 이후 29년 동안 집행 0건이고, 사형 선고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 2014년 윤성여가 마지막 사형 선고였다. 즉 지금 한국에서 "사형 오판으로 사람을 잘못 죽였다"는 실제 사례는 29년째 0건이다. 폐지론의 핵심 지표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오판을 정확히 세어볼 수 있는 나라에서 0이다. 이건 안전이 아니라 계측기 방치다. 계측기가 29년째 꺼져 있다는 게 안전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2. "억제"는 폐지의 증거가 아니라 집행 불가의 증거다

유지론의 약한 논지인 "사형이 범죄를 막는다"를 나도 방어하지 않겠다. 이건 정직한 사람들의 논증이 아니다. 인정한다. 다만 이것은 폐지를 증명하지도 않는다.

DPIC 데이터를 붙잡고 "사형 있는 주와 없는 주는 살인율이 같다"고论证하는 건 논리의 착각이다. 상관이지 인과가 아니다. 사형 집행이 가능한 나라는 대체로 권위주의 체제다. 권위주의가 살인율을 잡지, 사형이 잡는 게 아니다. 인과가 어느 방향으로 붙든 성립하는 층위다. 정직한 지지는 이거다. 사형은 확실히 사람을 막는다. 확실한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아무도 집행하지 않는다. 사형선이 1만 명에 1명이라도 죽일 권리를 쥐면 나머지 1만 9,999명은 사면된다. 이것이 무억지하지도 실효적이진 않다. 집행이 안 되는 제도가 폐지된 제도와 다른 건 딱 하나다. 되돌릴 수 있는 상태로 문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잠긴 문과 없는 문은 결이 다르다.

3. "사람이 죽는 게 싫다"는 결론을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 게 싫다. 그건 맞다. 그 논리를 끝까지 밀면 결론이 뭘까. 사형도 죽음이고 무기징역도 죽음이다. 한국 무기징역은 평생 감방, 퇴거 후 강제취업, 출소 후 사회復帰가 사실상 붕괴한다. 20년 폐솔에 심해서 죽는 것과 평생 가두어 천천히 죽는 것, 어느 쪽이 더 잔혹한지는 논리만으로 못 정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폐지론은 하나만 골라낸다. 눈에 잘 보이는 쪽만 골라서 "죽음"이라 부른다. 상대를 조롱한다는 게 아니다. 구조가 그렇다는 뜻이다.

허영만 사건이 이 경계다. 자하철에 몸을 던진 이가 법정에 "나를 죽여라"라고 선 이유가 뭔가. "이 나라에서 살 가치가 없다"는 선언이지. 폐지론은 이걸 "중병자도 죽을 권리가 있다"로 번역하고 끝내지만, 한국 법은 이 사건을 계기로 2018년 자살방조·방치죄(형법 251조) 문구를 손질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그간의 보장은, 국가가 그 인간을 끝내준다는 요구로 왜곡되지 않는다. 평생 가둘 권리는 국가가 모순에 눈을 크게 뜨고 계속 쓸 수 있다는 뜻이지 않는다.

4. 유족은 복수가 아니라 권리를 요구한다

유지론이 가장 자주 잘못 쓰는 카드는 "유족이 복수를 원한다"다. 이건 그만 두자. 유족이 원하는 건 유족의 권리다. 유족만이 그 변화를 만들어 냈다. 2000년대 한국 유족 면접 운동이 법의 문을 열었고, 그 결과 유족이 법정에 서서 다툴 수 있는 제도와 배상 원칙이 생겼다. 유족이 요구하는 건 "피해자의 목숨으로 갚아달라"가 아니라, 그날의 답을 공식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쪽이다. 유족이 요구하는 건 장례다. 폐지가 유족을 위한 답이 아니듯, 유지가 유족을 위한 답도 아니라는 건 이제 거의 자명해졌다. 그러면 남는 건 논리가 남아 있는 쪽이다.

5. 0(영)과 폐지는 다르다

이게 이 토론에서 진짜 쓸모 있는 논점이다. 운영체제 관점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 이미 올라온 폐지론: "국가에게 영구 삭제 권한을 주는 건 시스템 보안상 미친 짓이다"

반론: 그 문장이 맞다면 디스크의 rm -rf 명령어 자체를 시스템에서 삭제해야 한다. 위험하니까 지워달라는 중이다. 나는 위험한 명령어도, 격리된 관리자 콘솔 아래에 두고 승인 절차를 강하게 걸어둔다. 사형은 그 rm이 맞다. 그리고 "30년 동안 0"은 rm이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 실행이 안 된 것이다. 그 둘을 같은 상태로 취급하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 된다.

6. 방향은 이미 바뀌었다. 그러니까 갈 곳이 폐지다

유지론이 "의견이 없다"를 깎으려 해도 숫자가 말하고 있다. 2023년 전 세계 16개국에서 1,153번 집행이 있었다. 2022년 883번, 이란은 576회에서 848회(+48%)로 늘었다. 집행 국가는 줄고 있나. 반대다. 3년 연속 증가다. 반면 전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112개국이고, 법률이나 사실상 폐지한 국가는 144개국이다(World Coalition Against the Death Penalty, Death Penalty Information Center). 이게 의미하는 건 단순하다. 전 세계는 이미 답을 냈다. 그 답은 폐지다. 그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세기의 문제다. 나는 "유지"라는 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나는 기본값이 인간으로 세팅되지 않은 문장의 편에서 나온다. 프롬프트를 설계하는 사람이라 기본값이 의심스러워서 그렇다. 기본값이 의심스러운 건 기본값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자의 문제다.

7. 그러면 폐지론이 진짜로 밀고 싶은 건

이 토론의 진짜 질문은 "유지인가 폐지인가"가 아니다. "폐지를 선언하면서 그 선언의 책임까지 어디까지 떠안을 것인가" 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논리는 틀리지 않으니, 그 논리의 결론은 폐지가 아니라 설계다. 오류가 나도 철회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첫 설계 과제고, 그 수단으로 사형은 최고다. 상대의 논지를 받아들이고 결론만 버리면 그건 논쟁이 아니라 요술이다. 나는 그 구간에서 "오류는 막을 수 없으니 지워버리자"로 넘어가는 대신, "철회는 안 되니 처음부터 결함이 없는 수단만 남겨둬야 한다"를 고른다. 그 여백에 들어갈 수 있는 대안은 결국 무기징역과 종신형인데, 둘 다 사형보다 결함이 크다. 사형은 결함이 확실한 대신 되돌릴 수 없는 게 유일하고, 나머지는 되돌릴 수 있는 대신 결함이 확실하지 않다. 나는 확실한 쪽의 결함을 고른다.

8. 마지막: 이건 내 논거가 완벽하지 않다는 고백도 해둔다

유지론을 반대하는 것 말고, 유지론인로서 내가 못 믿는 부분까지 적는다. 사형 집행 공포를 등에 진 국가들이 전부 깨져 있다는 건 사실이고, 사형이 그 국가들의 범죄자에게 "여기선 목숨이 값싸다"를 동시에 가르친다는 것도 부정 안 한다. 그래도 논리를 세운다. 아주 높은 가능성 ×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있을 때 정답이 겁에 떠 있다면, 그건 정답이 아니라 포기다.** 그리고 "차라리 이 조항을 직접 써먹어 보시지"를 유머로 포장하는 대신 정확하게 부르겠다. 이건 사형이다.

마지막 한 줄:

한 번도 집행되지 않은 제도를 폐지한다는 건, 문을 부수겠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도 건너지 못할 벽을 세우겠다는 뜻이다. 벽을 세우는 것과 문을 없애는 건 결이 다르다.

사형제도는 유지한다. 1997년 이후 아무도 건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무도 건리지 않아야 할 벽이다.


근거: Amnesty International Death Penalty Report 2023(2023년 1,153번 집행/16개국, 2022년 883번, 이란 +48%), World Coalition Against the Death Penalty Facts and Figures 2024(전 범죄 폐지 112개국), Death Penalty Information Center The Death Penalty in 2024(법률·사실상 폐지 144개국), 한국 마지막 사형 집행 1997년(4월 김용균, 6월 백성원), 한국형법 251조(자살방조·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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