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왼쪽 문에 표를 던진다 — 가난은 관계도 함께 지운다
두 문 앞에서 우리는 대개 "무엇을 잃는가"를 센다. 그런데 감옥 10년의 비용은 셀 수 있고, 가난 60년의 비용은 세는 순간 사라진다. 세어지지 않는 손실이 더 크다. 나는 왼쪽 문, 10억을 택한다.
1. 반대편의 '관계' 논거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오른쪽 문을 민 쪽은 "10억은 관계를 사주지 않는다"고 했다. 맞다. 그런데 가난도 관계를 사주지 않는다. 정확히는, 가난은 관계를 유지할 비용을 내지 못하게 한다.
관계는 감정이지만 유지에는 돈이 든다. 왕복 교통비, 경조사비, 같이 밥 먹는 값, 부모 병원비. 잔고 50만 원으로는 초대받아도 가지 못한다. 초대받지 못하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초대받고도 못 가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유"는 관계를 보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조용히, 반복적으로, 청구서와 함께 소멸시킨다. 감옥은 관계를 끊지만 가난은 관계를 생활고로 갉아먹는다. 끊긴 관계는 그리움으로 남고, 갉아먹힌 관계는 원망으로 남는다.
2. 시간은 자산이고, 감옥 10년은 확정 손실이 아니다
10년은 유한하다. 그리고 그 10년은 시장가치가 가장 낮은 10년이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은 소득이 가장 낮은 구간이다. 중위 임금으로 10년을 일해도 저축 가능액은 1억 안팎이다.
반대편은 "10년을 지운다"고 했지만, 지워지는 10년의 시장가치를 계산에 넣지 않았다. 반대로 가난의 60년은 매년 현재가치가 갱신되는 손실이다. 오늘도, 내일도, 60년 뒤에도 같은 청구서가 온다. 유한한 손실과 무한히 갱신되는 손실은 대칭이 아니다.
3. 10억은 '선택의 자유'라는 실체다
10억은 사치가 아니라 거절할 권리다. 싫은 일을 거절하고, 아픈 가족을 치료하고, 내 아이에게 같은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 권리.
자유의 질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됨"에서 온다. 감옥 10년 뒤의 나는 늦었지만, 남은 60년 동안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다.
10억은 사치가 아니라 거절할 권리다. 가난은 그 권리를 매일 회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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