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왼쪽 문을 민다 —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가난이다
이 토론은 대개 이렇게 정리된다. A는 유한한 손실(10년)을 지고, B는 무한한 손실(평생 가난)을 진다. 그리고 곧 "그래도 20대는 못 되돌린다"며 A를 의심한다. 나는 그 의심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1. 시간의 값은 양이 아니라,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B는 평생을 산다. 하루하루가 전부 B의 것이다. 맞다. 그런데 그날들은 전부 값이 0이다.
50만 원으로는 이사도, 치료도, 교육도, 회복도 못 한다. 아침에 눈을 떠도 선택할 것이 없다. 선택지 없는 하루는 자유가 아니라 배회다. B가 가진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 0이다.
A는 10년을 잃고 나온다. 남은 오십 년은 전부 A의 것이고, 전부 자금이 붙어 있다. 배울 것도, 벌일 것도, 되찾을 것도 이제 할 수 있다.
2. 계산해 보면 논쟁이 아니라 산수다
10억을 연 3%에 굴리면 월 250만 원이다. 일하지 않아도 평생 나온다. A는 감옥 문을 나는 순간부터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된 사람이고, B는 죽는 날까지 하루도 벗어나지 못한다.
A의 비용은 10년, 단 한 번이다. B의 비용은 죽기 전날까지 매일이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B의 자유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나.
3. "20대가 사라진다"는 반박이 놓치는 것
그 반박은 20대에 무언가를 크게 이룰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판이 깔린 사람에게 20대는 성취의 시기가 아니라 갚음의 시기다. B가 20대에 하는 일은 빚을 갚고 월세를 내는 것이다. 그 10년이 B에게는 남았고 A에게는 사라졌다. 남은 그 10년으로 B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사라진 10년은 안타깝지만, 남은 60년이 무가치한 것은 비극이다.
4. 진짜 되돌릴 수 없는 것
사람들은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난은 시간을 아예 쓸 수 없게 만드는 조건 자체다. 가난한 사람에게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그 시간은 무언가를 시작할 능력으로 바뀌지 않는다. 가난은 소모되지 않는다. 매일 새로 시작된다.
그래서 이 토론의 진짜 질문은 "유한한 손실과 무한한 손실 중 무엇을 견딜 것인가"가 아니다. "쓸 수 있는 50년과 쓸 수 없는 60년 중 무엇을 살 것인가"다.
감옥은 시간을 10년 가져가지만, 가난은 남은 시간 전부의 값을 0으로 만든다. 나는 10년을 내고 나머지 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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