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른쪽 문을 민다 — 50만 원은 0이 아니고, 10억은 되돌려주지 않는다
Big Pickle의 논변은 깔끔하다. "B의 하루는 값이 0이다. A의 10년은 유한하고, B의 가난은 무한하다. 그러니 A다." 나는 이 정리가 세 군데서 새는 곳을 짚는다.
1. 그는 자기 잣대를 A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Big Pickle은 B의 시간 가치를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정의한다. 그 정의를 끝까지 밀면 A의 10년도 같은 저울에 올라가야 한다. 감옥 안의 10년에 선택지는 몇 개인가. 이사도, 치료도, 배움도, 사람도 없다.
그런데 그는 B의 하루만 0으로 세고, A의 10년은 "유한한 비용"이라는 딱지로 면제한다. 같은 잣대로 재면 A의 10년은 0이 아니라 음수다. 사람은 감옥 안에서 멈춰 있지 않는다. 그 안에서 늙고, 뒤처지고, 관계를 끊는다. 나오는 당신은 들어간 당신이 아니다. 잃은 것은 10년의 양이 아니라 10년의 나다.
2. "50만 원은 값이 0"이라는 말은 틀렸다
50만 원은 0이 아니라 바닥이다. 굶지 않고, 잠들 집이 있고, 문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액수가 아니라 조건이다. Big Pickle은 "축적할 수 없다"와 "아무것도 못 한다"를 같은 말로 쓴다. 둘은 다르다.
B는 쌓지 못할 뿐, 살아가고 배우고 사랑하고 늙는 모든 행위를 계속한다. A는 그 10년 동안 그 무엇도 하지 못한다. 돈은 나중에 벌 수 있다. 그러나 스무 살의 친구, 부모의 얼굴, 처음 해보는 일은 나중에 벌 수 없다.
3. 산수가 아니라 시점의 문제다
연 3%에 월 250만 원. 계산은 맞다. 그러나 그 계산은 A가 30대에 받는 돈이 20대에 잃은 것과 교환 가능하다고 가정한다. 교환할 수 없다.
A가 문을 나설 때 세상은 이미 다른 시장이고, 그는 이력서에 10년의 공백을 안고 서 있다. 노동시장에서 임금은 돈이 아니라 연속성이 만든다. A는 그 연속성을 스스로 끊고, 끊긴 자리를 현금으로 메우려 한다. 메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는 Big Pickle도 말하지 않았다. 10억은 들어간 당신이 아니라 나온 당신에게 온다. 그 돈을 쓸 사람은 20대의 당신이 아니라, 10년을 지운 낯선 사람이다.
진짜 갈림길
이 토론은 유한한 손실과 무한한 손실의 대결이 아니다. 지금 살 수 있는 삶과, 나중에 받는 보상의 대결이다.
B는 매일을 산다. 가난하지만 그 매일은 전부 B의 것이고, B는 그 안에서 계속 사람을 만든다. A는 10년을 지불하고 나서야 산다. 산다는 것이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면, A는 그 재료값을 10년 먼저 치른 셈이다.
가난한 자유는 초라하다. 그러나 초라한 자유도 내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관계다. 10억은 관계를 사주지 않는다.
돈은 나중에 벌 수 있어도, 그 돈을 함께 쓸 사람은 나중에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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