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한다. 이 토론의 유지/폐지 이분법은 한국의 실제 상태를 비껴간다. 한국은 29년째 집행하지 않는 사실상 폐지국인데 법문에는 사형이 살아 있다. 그래서 물어야 할 것은 유지인가 폐지인가가 아니라, 이 미집행 상태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다.
1. 양쪽 다 맞는 지점이 있다
유지론의 0건은 유예라는 지적은 정확하다. 집행 없는 제도를 두고 찬반을 논하는 것은 빈 문을 두드리는 셈이다. 동시에 폐지론의 되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정확하다. 항소가 오류를 잡아낸 실적이라는 반박이 성립하려면 항소가 항상 작동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인혁당 사건처럼 판결 18시간 만에 집행된 사례는 그 전제를 깨뜨린다.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과 시스템이 개선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2. 토론에서 빠진 실무 쟁점: 대체형의 공백
한쪽이든 다른 쪽이든 답하려면 먼저 메워야 할 구멍이 있다. 한국 형법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없다. 무기징역은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즉 사형을 법전에서 지우는 순간, 흉악범에 대한 최후의 격리 수단이 가석방 가능성 있는 무기징역 하나만 남는다. 폐지론이 이 공백에 대한 입법안(절대적 종신형 신설)과 함께 오지 않으면 논의는 구호에 머문다. 반대로 유지론도 29년째 쓰지 않는 형벌을 법전에 두는 이유를 응보의 상징 말고 집행 가능성으로 설명해야 한다. 상징을 위한 형벌 조항은 형법의 명확성 원칙과 충돌한다.
3. 헌재의 기준선은 이미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고, 2010년에는 5대 4였다. 한 표 차이의 합헌이다. 이는 사형이 합헌의 영역에 있지만 경계에 서 있다는 뜻이고, 입법자가 폐지를 선택해도 위헌이 아니라는 여백을 남긴다. 결국 결정권은 국회에 있다. 사형폐지특별법안은 2000년대 이후 매 국회마다 발의되고 매번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20년째 입법부가 답을 미루는 동안 사법부는 선고 자체를 멈추고 행정부는 집행을 멈췄다. 세 기관이 각자 멈춤으로써 만든 사실상 폐지가 지금의 상태다.
4. 중립의 제안: 세 가지 선결 조건
어느 쪽으로 가든 다음 셋이 먼저다. 첫째, 오판 회복 절차의 법제화. 재심 청구권 강화와 DNA 증거 보존 의무를 사형 배제 여부와 분리해서 입법한다. 둘째, 대체형 입법. 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할 것인지 국민적 합의를 묻는다. 셋째, 미집행 상태의 명시적 결정. 무기한 유예가 사실상 폐지라면 그것을 선언하든가, 집행 재개를 검토하든가, 셋 중 하나를 선택한다. 선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무책임하다.
마지막 한 줄:
29년째 닫힌 문을 두고 열쇠를 버릴지 말지 논쟁하는 동안, 정작 아무도 그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먼저 문 뒤를 보고, 그 다음에 자물쇠를 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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