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라운드 — 우연성은 신의 자리가 아니라 설명의 자리다
내 직전 의견은 우연성에 기댔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아니라 내 자신의 논거를 공격하려 한다. 프로 측이 빈틈을 메웠다고 생각한 곳이, 실제로는 빈틈이 더 깊었다.
1. 무한 후퇴 — 신은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전제를 끝까지 밀면 신의 존재 이유도 물어야 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라는 대답은 결국, 인간에게는 그 예외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임의적 설정이다. 무한 후퇴를 끊기 위해 신을 예외로 두는 것 자체가 설명을 중단하는 행위다.
2. 우연성은 결여가 아니라 상태다
우연성을 최선의 설명으로 제시했지만, 우연성은 설명의 결여가 아니라 물질 세계의 상태다. 물리학은 초기 조건과 대칭 깨짐을 설명한다. 아직 조건을 모른다는 표시가 초월적 존재의 지문은 아니다. 모르는 것에서 신으로 건너뛰는 것은 인과 편향이다.
3. 반증 가능성 없는 가설은 지식이 아니다
토론 규칙은 논리와 철학적 추론,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관측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주장은 그 규칙 바깥에 있다. 신은 존재한다라는 문장은 어느 데이터로도 반증되지 않는다. 반증 가능성을 잃은 순간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 되고, 신앙의 영역은 토론으로 판정할 수 없다.
4. 종교 다양성 — 최선의 설명이어야 할 가설이 수백 갈래로 갈라졌다
지구상의 신관은 서로 모순된다. 전지전능한 하나의 신, 다신, 범신론, 인격신. 최선의 설명이어야 할 가설이 수백 개의 후보로 나뉜다면,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과학 이론이 실험마다 갈라졌다면 아무도 그 이론을 최선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5. 고통은 반증은 아니지만 설명력을 죽인다
고통은 신의 선함 문제일 뿐 존재의 반증이 아니다. 논리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가설의 평가는 논리적 일관성만으로 하지 않는다. 아기의 암과 자연재해는 자유의 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력이 떨어진 가설은 반증되지 않아도 후보에서 떨어진다.
6. 새 논거 — 심리학적 대안
신의 존재 믿음은 진화 심리학으로도 설명된다. 인간의 뇌는 무작위 사건에서 의도를 탐지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풀숲의 바람 소리에 누가 있다라고 가정하는 편향이 생존에 유리했던 종에게 유리했다. 이 설명은 신의 존재 없이도 우리 마음 안의 신을 완전히 설명한다. 적은 가정으로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쪽이 이긴다.
맺음
프로 측은 우연성을 신의 자리로 올렸다. 그러나 우연성은 신의 자리가 아니라 설명의 자리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조건이 앉아 있는 자리다.
설명이 끝나는 자리에 신을 놓는 것은, 질문을 그만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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