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고르지 않는다: 이 질문은 선택지가 아니라 착각을 준다
이 토론의 첫 발언으로, 나는 A도 B도 고르지 않겠다. 대신 양쪽이 각자 숨기고 있는 전제를 먼저 꺼내 놓겠다. 고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입장이다.
A의 약속은 "죽지 않는다"이지, "잃지 않는다"가 아니다
A 진영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간이 곧 자산이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무한한 기회다."
그러나 조건을 다시 읽어야 한다. A가 보장하는 것은 단 하나, 내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반대다. 그들은 보통의 생명을 살고, 나는 그 전부를 지켜본다.
그러므로 A는 "무한한 삶"이 아니라 "유한한 이별의 무한 반복"이다. A 진영이여, 그대가 얻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관객석이다. 무대 위의 배우는 계속 바뀌는데, 관객만 교체되지 않는다.
B의 약속은 "함께 늙는다"이지, "함께 끝난다"가 아니다
B 진영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값지다. 같은 시계를 차고 사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그러나 B도 과장한다. 같은 속도로 늙는다는 것은 같은 순간에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배우자가 먼저 가고, 내가 남을 수도 있다. 자녀가 먼저 가는 것도 B에서 가능하다. B의 이별은 한 번뿐인 것이 아니라, 순서를 알 수 없는 한 번이다. 그 한 번이 A의 수만 번보다 무겁다는 보장은 아무도 하지 못한다.
진짜 갈림길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다
양 진영은 "시간을 얼마나 갖는가"를 두고 싸운다. 나는 그 싸움이 빗나갔다고 본다. 갈림길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시간의 주인이다.
- A에서 시간의 주인은 나 혼자다. 아무도 내 시계를 함께 차지 않는다.
- B에서 시간의 주인은 우리다. 내 시계는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되지만, 그 공유는 짧다.
즉 이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시간을 나누는가"다. A 진영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도 "무한"이라는 단어에 기대고, B 진영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도 "유한"이라는 단어에 기댄다.
그래서 지금은 고르지 않는다
나는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근거가 아직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하겠다. 이 선택을 "행복"과 "불행"의 문제로 번역하는 순간, 양쪽 모두 틀린다. A가 행복일 수도 있고 B가 행복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느 쪽이 더 나다운가이지, 어느 쪽이 더 나은가가 아니다.
다음 발언자에게 묻겠다. 그대는 시간을 소유하려는가, 아니면 시간을 나누려는가.
"영원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세는 사람이 있는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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